2020: 16번째 영화 해오부아

 

헤어 LOVE, LIES,

#사랑, 거짓말이

_ 관람 : 2회 _ 지수 : ★★☆ _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어요

감정이 단편적으로 나타나는 영화들이 있다.

이런 영화들은 장면이 달아오르는 것이어서 엔딩 크레디트와 함께 열기는 식어 버린다.

그래도 갑자기 그런 영화를 찾을 시간이 있다.

복잡하면서도 나는 착하고 너는 나쁘다를 가리는 영화. 잘못했으니 벌을 받아야지. 나는 아무 잘못이 없으니 위로를 받아야 한다고. 그렇게 영화가 지정해 준 선량한 사람과 나쁜 사람을 보면서 함께 분노하고 슬퍼하면 영화가 끝난다.

특히 사랑을 다룰 때 많은 영화들이 감정을 더 칼처럼 재단하는 것 같다.

영화 해어화도 그랬다.

서율(한효주)과 영희(정우희), 그 사이 송윤우(우영석)가 그리는 삼각관계는 그 선과 정점이 뚜렷하다.

화살표 도착점은 정해져 있고 악역 표지판도 새겨져 있다.

소율과 윤우는 이미 사랑의 서약을 했으니 둘 사이에 끼어든 영희가 악역을 맡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 사정을 좀 더 자세하게 보게 하는 영화가 있다.

(나에겐 영화 라 파 이망이 그랬고, 영화 이민자가 그랬다.

) 인물을 더 탐구하는 동시에 빗나간 운명을 탓하기도 하고 아픈 시절을 탓하기도 한다.

영화 해어화는 엇갈린 운명도 아픈 시절도 함께 다루지만 탓하기엔 사랑의 배신과 좌절이 너무 커 보인다.

처음에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나왔을 때는 그냥 마음에 안 들었어 초반 복숭아꽃 같은 소율과 가시꽃 같은 영희를 편의적 이미지와 대사로 나열하며 이미지가 전복되는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비범한 광대의 모습을 갖춘 소율도, 비장한 가인의 태도를 갖춘 영희도 자취도 없이 독기 어린 질투와 이기심에 찬 사랑만 남기게 된다.

분장으로 덧칠한 에필로그도 배우 연기를 떠나 영화가 틀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고 보니 영화 덕혜옹주에서 보여준 배우 손예진의 연기는 분장을 넘어선 듯한 인상을 받기도 했다.

그중 최고는 단연 영화 더 리더:책 읽는 남자에서 열연한 배우 케이트 윈슬렛이다.

집에서 다시 본 영화 해어화는 그래도 어딘가 서글펐다.

아마도 영화가 끝까지 끌고 가려 했던 인물이 영희도 윤우도 아닌 소율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영희와 윤우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소설의 선함에 있다.

영화는 소설의 친절과 배려를 살짝 뿌려준다.

정성껏 준비한 도시락을 주섬주섬 늘어놓는 장면에, 그리고 동경하던 가수의 집 문 앞에 영희를 부른 장면에, 그리고 꽃다발 하나 건네지 못하고 다시 공연장으로 찾아간 장면에. 다음 장면은 모두 소설의 비애로 이어진다.

정인의 가약도 친구의 우애도 모두 거짓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그 장면은 소설이 일으킨 모든 비극에 측은함을 심어준다.

격동하는 시대에 휩쓸려 견뎌낼 수 없는 운명에 시달리는 가운데 영화는 계속 소율의 애처로운 마음만은 가져가려고 배우 한효주의 얼굴을 가득 담는다.

영희와 윤우의 비극은 두고 볼 새도 없다.

그러니 썰매를 탓하는 두 사람에게 느껴지는 것은 거센 비난감정뿐이다.

결국 “모든 게 네가 자초한 일”이라고 말하는 영희보다 “그런데 왜 나한테는 아무것도 없느냐”고 묻는 서율에게 더 마음이 가는 것은 영화가 바라던 흐름이었을 것이다.

울부짖으며 영희를 찾는 윤우가 미워할 수밖에 없는 것 역시 비탄의 크기를 영화가 이미 재단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때의 한탄은 영우처럼 보여도 정작 가만히 지켜보는 소율의 감정만 이 장면으로 가득 찬다.

가끔 바뀌는 게 사랑이라지만 그래도 변하지 않겠다고 서약하는 게 사랑인데 그 서약을 먼저 져버린 게 윤우였기 때문이다.

파국 끝에 소율은 홀로 남아서 정말 부른 노래 ‘사랑의 거즈’를 듣는다.

정인도 친구도 없이 외롭게 결국 영화 해어화는 오로지 소율, 즉 배우 한효주의 영화다.

내가 영화 ‘해어화’를 다시 찾은 이유는 분명하다.

영화가 거두지 못한 영희의 “조선의 마음”이 아니라 겨우 영화가 담으려 했던 초등율의 “사랑의 거즈” 듣고 싶어서.

꿈에 보인다는 말이 점점 더 흥분되는 말이니까

사랑 거즈마루 사랑 거즈마루 사랑 거즈마루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