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장애아가 세계적 인지과학자가 되었다(청각장애 카우프만의 인생 대반전)

2022년 6월 22일 (수)

중추 청각 처리 장애 학습 장애자 코프먼·스콧·발리·코프먼의 인생은 놀라운 삶 대반전의 대표적 사례다.

카우프만은 어렸을 때 중이염을 심하게 앓아 중추 청각 처리 장애를 갖게 됐다.

외부의 소리가 대뇌에 전달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정보의 인식과 언어 표현에 어려움을 느끼는 장애이다.

정보를 처리하는 속도와 정확도가 정상인보다 현저히 떨어지는 학습 장애와 낮은 지능을 보인다.

중추 청각 처리 장애 카우프만은 남의 말을 이해하는 속도와 반응 속도가 느렸다.

그는 정상적으로 듣지 못하고 학습에 필요한 정보를 제대로 전하지 못했다.

당연히, 지능 및 성적 평가에서 매우 낮은 점수를 받았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아이들은 카우프만은 놀리며 괴롭혔다.

초등 학교 3학년을 2번이나 유급, 학습 장애아의 판정을 받았다.

3학년을 다시 다니면서 학습 장애아를 위한 특수 교육을 받은 그는 공부에 대한 관심과 목표를 잃었다.

그는 9학년(한국 중학교 3학년)이 된 1995년 봄 그의 인생을 바꾸는 담임 선생님을 만났다.

“당신은 이 클래스에 있어야 아이 같지 않다.

“당신은 왜 여기 있니?”라고 선생은 물었다.

이것을 들은 코프먼 본인도 놀랐다.

자신도 왜 학습 지원실에 있는지 몰랐다.

누구도 이런 질문을 던지다 준 적이 없으며 심지어는 자신도 그런 질문을 던지는 것을 생각 못했어. 선생님은 코프먼으로 이보다 더 도전적인 수업을 받아 보면 어떻겠느냐고 추천했다.

힘들지만 일반 학생 반에서 공부하고 보자는 것이다.

선생님은 코프먼이 무엇을 할 수, 무엇이 되느냐를 조사하도록 격려했다.

카우프만의 일생을 송두리째 바꾼 운명적 만남이다.

그날 집에 돌아온 코프먼은 가족에게 나는 특수 학급을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이 말을 들은 가족은 크게 환영하며 코프먼을 격려했다.

그때부터 카우프만은 여러가지를 시도했다.

그 중 하나가 첼로를 배우는 것이었다.

그는 1995년 여름 방학 동안 하루 8시간 첼로 연주를 연습했다.

마침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소속의 첼리스트에서 은퇴한 할아버지의 지도를 받을 수 있었다.

그 뒤 그는 고등 학교 오케스트라에서 제2첼리스트인 각종 음악 대회에서 상을 수상했다.

첼로에 열중했다 덕분에 그의 인지 능력도 조금씩 향상했다.

뒤진 학업도 따라잡고 대학 진학 준비할 수 있게 됐다.

그렇게 될 때까지 그는 엄청난 보충을 해야 했다.

여름 학기 수업을 들으면서 정말 미친 듯이 공부했다.

예일대 심리학과를 가다니 카우프만은 지능 측정에 문제가 있다고 느꼈다.

그런 가운데 다중 지능을 소개한 인지 과학에 깊은 매력을 느꼈다.

고교 진학 교사와 상담하면서 나는 예일 대학에서 심리학과에 진학하고 있다고 말했다.

거기서 인지 과학을 공부하고 새로운 지능을 탐구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코프먼의 말을 들은 진학 상담사는 잠시 당황했다.

얼마 카우프만이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해도 여전히 인지 능력에 문제가 있었다.

적어도 세계 최고 명문 대학인 예일 대학에 진학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때문이다.

궁여지책으로 진학 상담사는 코프먼에 인지 능력 테스트를 제의하는 예상대로 검사 점수가 좋지 않았다.

특히 그의 SAT점수도 예일대에 가수준은 아니었다.

아니, 예일 대학뿐 아니라, 상위권의 어떤 대학에도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공부했다고 생각한 코프먼은 실망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목표를 낮추고 역시 인지 과학에서 유명한 카네기 멜론 대학 심리학과에 지원했다.

그는 인지 심리학을 공부하고 지능을 재정의하겠다는 꿈을 꼭 이루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카네기 멜론 대학 심리학과 입시에서 떨어졌다.

그의 SAT점수가 아직 인간 지능을 공부하는 데 필요한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학습 장애아에서 우수 학생에 태어났다.

그러나 자신이 원하는 대학은커녕, 목표를 낮게 지원한 대학에서 탈락했다.

이 정도가 되면 대부분의 사람은 크게 좌절하고 모든 것을 단념하다.

그러나 카우프만은 꿈을 이루기 위해서 기발한 방법을 생각했다.

합격 가능성이 높은 카네기 멜론 대학 성악과에 입학한 뒤 심리학과로 전과하기로 결정했다.

다행히 그는 카네기 멜론 대학 성악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하겠다는 그의 의지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카우프만은 대학에 진학한다고 심리 학부 사무소에 갔다.

심리학과로 전과하려는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한 것이다.

이 일을 오랫동안 계획했지만 심리학을 공부하기 때문에 성악과에 입학했다는 사실은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는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심리학을 부전공으로 신청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사무소 근무자는 흔쾌히 부전공의 신청을 내고 그는 달리도록 기쁜 듯이 서류를 제출했다.

마침내 그가 원하는 인지 심리학 공부를 위한 첫걸음을 내디딜 수 있었다.

합격에 성악과에 입학한 뒤 심리학과로 전과하는 다음 학기가 시작되면 카우프만은 처음 상담한 심리학과 직원을 다시 찾아갔다.

심리학 수업을 받아 보았지만, 자신에게 딱 맞는 전공이라며 심리학과로 전과할 수 있는지 물었다.

그녀는 “물론 여기 서류 2장에 서명하세요!
”라고 그에게 서류를 내밀었다.

이렇게 카우프만은 자신이 바라던 인지 과학 공부를 시작했다.

우여곡절 끝에 새로운 지능을 탐구하려는 꿈을 위한 그의 도전이 시작됐다.

그 뒤 카우프만은 열심히 공부하고, 카네기 멜론 대학 심리학과를 우등으로 졸업했다.

05년 게이츠 장학금으로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철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9년 그가 꿈에 그리던 예일 대학에서 인지 심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남다른 장애 때문에 어렵고 험한 길을 돌아다녔지만 끝까지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현재 컬럼비아대 교수인 인간 잠재력 과학 센터의 소장을 맡고 있다.

그는 미국 심리 학회와 국제 멩사가 주는 탁월한 연구 상을 수상하며 인간의 창의력에 관한 많은 책을 썼다.

2014년 자신의 성장 과정을 바탕으로 아이들의 재능과 노력, 성취에 관해서 알아야 하는 모든 것을 담은 『 불가능을 극복한 아이들 』을 발표했다.

심각한 청력 장애 학습 장애 카우프만은 자신이 좋아하는 인지 과학을 공부하느라 불굴의 의지를 보였다.

그것도 보통의 모범생도 감히 보지 못한 예일 대학 심리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자신의 지능 검사 점수가 낮다는 사실을 잘 알고 지능이 단순히 IQ검사 결과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몸소 체험했다.

그래서 그는 평생 지능을 재정의하기 위해서 탐구하는 훌륭한 성과를 거뒀다.

중추 청각 처리 장애를 가진 학습 장애아 카우프만의 대반전 인생 이야기이다.

초등 학교 시절 전교 최하위를 맡았으나, 존스. 홉킨스 병원 신경 외과 과장이 된 벤·카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극적인 이야기이다.

누가 벤·카슨과 코프먼이 이렇게 훌륭한 사람이 될지 상상했을까. 기적 같은 일이지만, 실제로 일어난 것이다.

아이들은 모두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그들의 두뇌는 무한의 가능성을 갖고 있다.

부모님과 선생님들이 어떻게 그것을 키울래? 깊이 성찰하고 고민해야 할 것이다.

저의 중이염의 경험 나도 어렸을 때 중이염에 걸렸다.

무려 30년 고생했다.

나중에는 귀에서 고름이 밖으로 흘러나갔다.

여름에는 심한 냄새가 나을 정도로 심했다.

남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을 때가 많았다.

강의실에서 가장 앞자리에 앉아 촉각을 곤두세우고 들어도 놓칠 것이 많았다.

밤은 사람들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기 때문에 한마디도 못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대학 4학년 때 지금 한국 최대 업체인 S그룹 공채 시험에 합격했다.

의기양양 임원단의 면접에 응했다.

전혀 면접관의 임원들과 내가 앉은 자리가 멀었다.

청력이 크게 훼손된 저로서는, 똑같이 대답밖에 없었다.

면접을 마치고 대기업에 취직의 꿈을 포기했다.

눈앞이 캄캄했다.

당시 모 대학 병원에서 너무 중이염의 뿌리가 깊은 수술로 어쩔 수 없다는 답을 들었다.

공부를 계속하는 길이 제가 살길이라고는 절박감이 밀려들었다.

30대 중반이 되고 수술을 받았다.

긴 염증으로 고막은 완전히 녹아 없어진 지 오래다.

다행히 큰 신경이 완전히 망가져직전에 청력의 상당 부분을 회복했다.

청력이 돌아오지 않을까 걱정하였으나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그동안 의술이 눈부신 발전을 거듭한 덕분이다.

귀 뒤의 피부를 절개하고 얇은 판을 끊고 고막에 이식했다.

지금도 내 귀에는 그 때 이식한 인공 고막이 위치하고 있다.

심한 중이염으로 오랜 고생했던 나로서는, 카우프만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남의 말을 잘 안 듣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경험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다.

바보처럼 보이는 것이 많은 경우에 안 들면 어처구니없는 일을 하기 일쑤다.

그래서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지능이 떨어지거나 조금 모자란 사람에게 보였을 것이다.

볼 수 없는 것도 들리지 않는 것도 사람을 괴롭힌다.

그 고통을 극복한 코프먼을 존경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