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는 전쟁터지만 회사 밖은 지옥이라는 글에 누군가 글을 올렸다.
최근 들어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지인들이 1인 기업 또는 N잡에 대한 생각이 많다.
대기업 임원을 하는 친구들이나 이제 조만간 50개가 넘는 개발자 후배들 모두가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것에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
…
브런치 글을 잘 읽는 편이다.
아무래도 그쪽 글은 문맹에 가까운 사람들이 쓴 글이 많다.
문장의 품질이나 콘텐츠가 주는 깊이가 높은 것은 사실이다.
IT 트렌드 또는 인사이트에 관한 글은 브랜치보다는 메디움(해외 플랫폼)이 퀄리티가 높은 편이지만 인문, 사회, 수필 쪽 글은 로컬 특성이 강하기 때문에 브랜치에 좋은 글이 많다.
아무래도 ‘작가’라는 꼬리표 장사가 ‘문맹’들의 욕망을 자극했을 것이고 경쟁하듯 글의 품질을 높였다고 볼 수 있다.
[푸른물고기-50대가 쓴 1인 기업 이야기](50대, 인생을 바꾸는 100일 글쓰기) | 정년을 앞두고 은퇴하신 분들께는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요즘 젊은 세대에게 직장은 옵션이고 하고 싶은 일에 자신의 인생을 건다.
갈수록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직업관이 퇴색되고 있다.
직장이 아니면 장사(사업)라는 단순한 카테고리로 나뉘려면 ‘다양한 직업과 생생한 일이’ brunch.co.kr [테슬람-사내는 전쟁터지만 회사 밖은 지옥이다] 5-1. 외주화로 자생력을 잃어가는 대기업 직원 | 내가 처음 14년 자동차 부품사에 입사한 뒤 퇴사할 때는 머릿속에 이런 생각뿐이었다.
– 아니, 도대체 왜 이 일을 하는 거야? – 적성에 맞지 않을 정도가 아니라 그냥 하기 싫은 거야.- 이 일 열심히 하면 한 분야 전문가가 될 수 있나? 나가면 금세 돈이 떨어져 기업이라는 보호의 울타리 안에서 빠져나온 외톨이가 될 것 같은 걱정도 컸다.
co.kr 젊은 작가라 감각이 좋다.
편집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내용은 술술 읽혔다.
그러다 댓글에 눈에 띄는 내용을 보게 됐다.
여기(자영업)가 지옥이라고 해도 나름의 천국도 있습니다.
이 댓글을 읽자마자 갑자기 강한 의문이 생겼다.
벌써 내 이름(브랜드)으로만 산 지 10년째가 지났는데 내게도 정말 천국이 있었을까.혹시 나만 없었던 건 아닐까?
그리고 그 사람이 말한 천국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런 생각으로, 평소 백업만 하고 있던 메모와 SNS(인스타, 페이스북)의 글을 읽어 보았다(개발자라면 백업은 본능!
).
여기까지 와서 (10년) 행복한 뭔가가 있었지?
라는 생각으로 찾아보았다.
퇴사하기 전(10년 전) – 기록 1.
삶은 돼지고기가 왜 나왔지? 가끔은 내가 쓴 글을 읽으면 어떤 생각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한국본부가 할 일을 언론 공시로 먼저 알았던 시절. 그만큼 마케팅과 언플레가 심했던 회사다.
퇴사해 자신의 일자리를 찾겠다는 사람들 대부분이 ‘직장의 한계’를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각자 능력은 다르지만 지금의 직장생활이 자신의 최고치에 도달했다고 느끼는 순간 ‘퇴사’를 고민하게 된다.
자신이 근무하는 회사가 아무리 좋아도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자리는 한계치가 있다.
그리고 그 자리가 없어지면 회사가 아무리 좋아도 소용없다.
이러한 판단 하에 퇴사를 결심하고
기쁜 마음으로 내가 주인공 일을 찾으러 나갔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뒤 후배들과 술자리에서는 지긋지긋한 래퍼 토리로 갱스터랩을 읊어 버린다.
내가 미쳤어.그 좋은 인맥과 직장을 두고 돈은 이렇게 벌고.내 일을 하면서 – 기록(4~10년 전) 2. 생각해보니 초반에는 돈을 벌려고 노력한 흔적이 거의 없다.
찾아와 일을 한다고 해도 ‘샐러리맨 습성’이 아직 남아 있다 보니 수동적으로 응대했다.
갑과 을이 바뀐 자세로 임했다.
고객을 대할 때는 무조건 을이 돼야 하는데 직장생활에서 받은 대우를 자영업에서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갑자기 찾아온 넘치는 자유시간(?)에 취해 버렸다.
돈보다는 잃어버린 삶을 찾는 데 시간을 더 많이 썼다.
■ 그래서 아버지와 이야기할 시간이 많아졌다.
물론 대화를 한다고 해서 지난 시간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아버지의 생각과 삶에 대해 알고 어떤 것은 무감각하게 기억 속에서 지워버렸다.
인생이 흘러가듯 기억 속에서 사라져줘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을 늙어가면서 깨닫기 시작했다.
■ 건강을 챙겼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몸이 많이 망가져 있었다.
‘월화수목금금’은 대기업에 다닐 때나 벤처에 다닐 때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퇴사하고 내일을 조절하면서 해보니 다시 건강해지기 시작했다.
■ 여행을 떠난 직장생활로 부럽지 않게 벌었다.
기술집약적인 회사만 다니면 노동 강도가 세고 그만큼 연봉은 좋은 편이었다.
심지어 개인 외주 용역도 많이 했다(개인 아르바이트). 그래서 자만심이 심했다.
이런 자만심을 유지하기 위해 하루 4시간 이상 수면을 유지한 적이 없을 정도로 개발자로서의 퀄리티에 집중했다.
결론적으로 회사를 다니면서 여행 따위는 생각해 본 적도 없는데 퇴사를 하면서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져 평소에도 하늘을 보며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게 됐다.
10년 전에 갔던 계룡산 갑사. 지브리 스튜디오의 만화 세계 같았다.
■ 나 자신에게 관대해지기로 했다.
콤플렉스, 강박증 같은 것들이 나를 지켜주는 힘이었다.
생산적이지 않은 나를 용서하지 않고 살아왔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개발자 능력(경력) 하나에만 집중했다.
하지만 퇴사하고 나 자신에게 관대해지기로 했다.
게임, 낙서, 음악, 글에 대해 솔직해지기 시작했다.
더 많은 시간을 할당했다.
디지털 사고방식보다는 아날로그 감성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10년 전 넥서스7을 게임기 대신 사용했다.
아내는 일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잘하면 1인 기업 대부분이 엔잡러 3. 내가 기획하고 만든 서비스에만 집중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고객이 찾아오는 게 아니라 사라지기 시작했다.
고객을 만나도 꾸준히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외주 업무를 늘렸다.
그러나 신규 개발만 들어오다 보니 가성비(투여시간, 업무강도, 수금시기, ..)가 악화되기 시작했다.
결국 개발만으로는 먹고 살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주변 사람들이 하라는 일을 하게 됐다.
프로그래밍 강의를 민간(패스트캠퍼스), 정부기관, 대학에서 5년간 진행하게 됐다.
그리고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프로그래밍 분야의 서적도 출간했다.
심지어 정부기관이 운영하는 창업 프로그램 IT 컨설턴트도 했고, 그 관련 서적도 출간했다.
먹고살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시작했는데 의외로 해보니 그리 나쁘지 않았다.
개인 브랜딩 효과로 자동 영업이 됐고 수익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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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외주개발 이야기 외주개발 이야기 외주개발 상식에 대해서…www.vintageapp maker.com 1인 기업? 또는 N잡러를 하다 보면 과거에 모셨던 대표이사가 생각난다.
나름 화려한 인맥과 사업을 갖고 있었지만 늘 섭섭해했다.
그리고 회사 규모가 커질수록 채무 공포에 대표이사들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직 운영은 흔들리고 있다.
퇴사에 대한 환상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느낄 수 없겠지만 직장생활에서 가장 힘든 사람은 대표이사일 것이다.
대표이사의 생각에 아무도 공감하지 않고 비난만 하기 때문이다.
IT회사를 운영하는 대표의 80%는 직장인보다 낮은 수익을 얻는 경우가 많다고. 꽤 잘나가는 벤처회사를 운영하다가 순식간에 회사가 망하고 개인파산까지 당한 선배에게 몇 년 전 들은 말이 있었다.
그냥 회사에 다니는 건데 왜 사업을 했어?그러자 이런 말로 대답했다.
내가 원했던 것이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했을 뿐이다.
적어도 나는 내 영혼을 지켰다.
아마 이것이 내가 궁금해했던 댓글에 대한 설명이 아닐까 싶다.
(해석) 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내 인생을 결정하는 주체는 회사가 아니라 나로 행복하다.
Vintage app Maker